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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영문 테크니컬라이팅의 역사

by 코무카토리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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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테크니컬라이팅의 역사

 

 

영어 문화권의 역사
오늘은 테크니컬 라이팅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볼까 해요. 
테크니컬 라이팅은 세계 표준 언어인 영어 문화권에서 적립됐습니다
실제로 역사를 봐도 현재의 테크니컬 라이팅 학문은 미국에서 적립됐고, 수많은 글로벌 표준을 전달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영어의 역사에 대해 배워본 적이 있으세요? 오늘은 그것부터 얘기하려고요. 
우리는 영어는 영국이 앵글로색슨족이 사용하던 언어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실제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영국의 원주민이 아니죠, 원주민은 켈트족이었어요. 
사실 원주민들은 로마로부터 땅을 지켜줄 외인부대를 대륙에서 고용한 것인데요 그들이 바로 앵글로족과 색슨족이었죠. 
이들은 대륙보다 잉글랜드가 살기 좋고 기후도 온화하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족들을 대륙에서 이주시켜요. 
그러면서 이방인들의 인구가 늘게 됐고, 도리어 원주민들을 밀어내는 사건이 벌어지죠. 
스코틀랜드 지역과 웨일스 지역으로 켈트족이 밀려 나왔어요. 
결국 잉글랜드 역사는 이방인들의 역사인 셈이니 정말 아이러니하죠.

 

앵글로색슨족은 초창기 영어를 태동시켰고 침략한 로마의 라티나의 영향을 받아요. 
물론 프랑스의 정복자 윌리엄 왕도 영국을 침략했죠. 
그렇게 해서 프랑스와 라티나의 영향을 받은 앙글라이스라는 언어가 형성됐어요. 
이후 영국은 문화 중흥기를 맞게 되는데, 여러분도 잘 아는 셰익스피어 문학이 등장하던 때입니다.

그때 영국의 훌륭한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영국인들은 자긍심을 가지게 됐고, 그들도 역시 식민지를 개척하는 일에 몰두해요. 
그런데 이때 안타깝게도 미국이 독립하는 일이 발생해요.

또 미국은 멕시코 지역과 교류하게 됐고, 영어는 스페인어와 섞이게 되죠. 
그리고 오늘날 영어는 아시아 언어를 포함, 수많은 언어를 흡수하면서 100만 단어가 넘는 세계인의 언어로 바뀌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되짚어 볼 것이 있는데, 놀랍게도 영어에서 순수한 자신들의 언어는 4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결과적으로 엄청난 언어 수탈을 경험한 셈이죠.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는데, 모두 다 미국이 개입하면서 연합군이 승리했어요. 
1차 세계대전이 있었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고 3.1 운동에 영향을 준 윌슨 대통령이었어요.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언급하며 과거 세계 외교의 스탠더드였던 프랑스 버전에 추가해 영어 버전을 하나 더 만들어 사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모든 정상이 이에 흔쾌히 찬성하면서 세계 외교 무대에 영어가 등장하게 됐어요. 
독일은 강화조약의 불평등을 참지 못하고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데, 역시 미국이 참전하면서 연합군이 승리하게 됐죠. 
이때 독일의 포츠담에서 강화조약이 개최됐었어요.
그리고 연합군의 수장들은 조약에서 프랑스 버전 없이 오로지 영어 버전에 사인하는 식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전후 미국은 영어에 기반한 학문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영어를 통해 소통하고 있고, 세계어로 번역할 때도 기준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테크니컬 라이팅의 시초

테크니컬 라이팅을 창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오해하신 거예요. 
대중이 사용하는 검증된 표현을 검색해서 사용해야만 하거든요. 

1980년대 캐럴이 토마스 왓슨 연구소의 유저 인터페이스 인스티튜처의 설립자로 부임하게 됐을 때, IBM은 그에게 IBM 매뉴얼을 개선하라는 요구했어요.

그때 그는 자기 비서들에게 IBM 매뉴얼을 한 권씩 읽으라고 요청해요. 
다들 즐거워하며 돌아갔는데, 다음 날 아침부터 비서들은 매뉴얼 읽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있었어요. 
그만큼 매뉴얼이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던 거죠. 

그는 고민에 쌓여 가족들과 독일에 여행을 가요.
그런데 호텔에서 식사하던 중, 우연히 레스토랑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게 됐어요. 
포스터의 내용은 어린아이의 머리에 깔때기를 꼽고 지식을 주입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어요. 
이에 캐럴은 그 장면이 흡사 IBM 매뉴얼이 취하고 있는 방식과 너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보다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매뉴얼로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고, 급히 복귀한 후에 엔지니어들에게 매뉴얼 내에서 절차와 관련이 없는 개념이나 이론이나 참고 정보를 모두 제외하라고 명령했어요. 
그랬더니 매뉴얼의 분량이 5분의 1로 줄어들었어요.

그것을 다시 비서들에게 읽게 했더니, 비서들이 이제는 읽을 수 있다며 표정이 밝아졌어요. 
덕분에 매뉴얼 사업에 미니멀리즘이 들어오게 됐고, 이후 매뉴얼은 백과사전식 구성에서 벗어나 가이드 형식으로 변화했어요. 
IBM 토마스 왓슨 연구소에는 로버트 혼이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는 모든 정보의 토픽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성된다는 인포메이션 매핑 이론을 발표해요. 
이 이론은 전의 미니멀리즘 이론과 결합해서 다윈 인포메이션 타이핑 아키텍처, 즉 DITA 아키텍처로 소개됐어요. 
그 아키텍처를 전파하기 위해 그레션 하기스와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디벨로핑 IT, 테크니컬 인포메이션이라는 책을 발표하죠.

이게 테크니컬 라이팅 업계에서 베스트 셀러가 됐어요. 
DITA의 기반에 시스템을 만든 게 DITA-OT인데, 오늘날 콘텐츠 관리 시스템인 CMS가 채택하고 있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XML로 된 텍스트로 여러 토픽을 작성하기만 하면 목차인 맵에 따라 PDF나 HTML 등 원하는 형식으로 퍼블리싱이 되는 메커니즘을 말해요.

지금은 해당 시스템을 오아시스라는 기관을 통해 대중에 공개한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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